우울증 걸린 환자의 이야기? 아니다.
모든 병은 환자뿐만 아니라 그 주변 사람들에게까지 영향을 끼친다. 전염성이 바이러스 못지않은 우울증은 특히 그렇다. 환자와 그의 가족이 서로를 이해하다가도 상처를 주고, 화해하다가도 다시 다투는 과정을 쳇바퀴 돌아가듯 반복하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차라리 과거를 잊어버리고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누구나 그런 생각을 하지 않은 건 아니다. 그러나 모두가 기억상실증에 걸리지 않는 이상 그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문제의 근원을 찾아 해결하면 된다. 그러나 사람들이 이걸 몰라서 우울증을 극복하지 못하는 건 아니다. 그게 가장 어려운 과제이자 유일한 해결 방법이다. 이 영화 비버의 월터 블랙과 그의 가족 역시 이 난제를 온몸으로 겪고 있는 사람들이다.
폐인도 이런 폐인이 없다. 아내와 두 아들과 함께 살아가는 가장이자 장난감 회사를 이끌고 있는 사장인 월터는 하루의 대부분을 잠으로 보낼 만큼 무기력한 남자다. 정신과 진료도 받아보고, 우울증 극복 치료법도 해보고, 약물에 의존해보는 등 온갖 노력을 기울였지만 그는 병을 극복하지 못했다. 그런 그의 모습에 가족은 지칠 대로 지쳐간다. 아내 메러디스는 일중독자가 됐으며, 맏아들 포터는 ‘눈썹 지압’, ‘목 꺾기’, ‘입술 깨물기’ 같은 아버지를 닮은 자신의 습관을 기록하며 아버지를 부정하기 시작했고, 막내아들은 “투명인간이 되는 게 꿈”이라고 말할 정도로 학교에서 왕따가 되었다. 월터가 아내에게 별거 요청을 받은 것도 이때다. 가족과 떨어져 살게 된 월터는 샤워실에서 목을 매달다가 실패한 뒤, 고층 아파트 베란다에 몸을 내던지기 직전 자신을 부르는 소리를 듣는다. “어이!” 하는 소리의 정체는 자신의 왼팔에 달린 인형 ‘비버’였다.
비버는 월터의 초자아(슈퍼에고)이다. 할 일 없이 잠만 자는 월터에게 비버는 “이 한심한 놈아, 일어나. 넌 변화가 필요해. 중요한 건 지금보다 나아지려는 의지가 있다는 거야”라고 몸을 일으킨다. “스웨덴에서 유행한다”는 이 치료법 덕분에 월터는 다시 가정에 충실하게 되고, 그가 고안한 비버 목재 공구 세트가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가면서 회사는 재정을 다시 회복하게 된다. 여기까지만 보면 이 영화는 ‘한 중년 남자의 우울증 극복기’ 정도로 요약이 가능하다. 그러나 감독은 남아 있는 사람, 그러니까 월터의 가족을 챙기는 것을 잊지 않는다. 항상 왼손에 비버 인형을 들고, 비버 말투로 말하는 남편의 모습을 보고 아내는 “언제까지 그 인형을 가지고 다녀야 해? 과거의 모습으로 돌아가면 안 될까?”라며 과거의 남편으로 돌아오길 부탁한다. “(아버지와 닮은) 나를 버리기 위한 여행을 가는 꿈”을 이루기 위해 다른 친구들의 숙제를 대필해 용돈을 버는 아들 포터 역시 인형에 의존하는 아버지의 모습이 싫기는 마찬가지다. 그런 그에게 학교 ‘퀸카’ 노아가 졸업식에서 낭독할 연설문의 대필을 부탁한다. 알고 보니 노아 역시 과거의 상처 때문에 자신을 온전히 드러내는 것을 주저하는 아이다. 이처럼 월터를 비롯해 아내 메러디스, 아들 포터, 포터의 친구 노아 등 영화 속 인물들은 때로는 서로를 이해하고, 또 때로는 서로에게 상처를 주며 서서히 자신을 온전하게 바라볼 수 있는 용기를 얻는다.
연출의 조디 포스터
우울증 걸린 중년 남성을 성별이 다른 조디 포스터가 어쩌면 이렇게 잘 표현했는지 감탄이 절로 나온다. 우울증은 남성, 여성 가릴 것 없이 모두에게 해당된다. 우울증에 걸린 중년 남성을 멜 깁슨의 미친 연기력도 연기력이지만, 그걸 섬세하게 잘 표현하고 연출한 조디 포스터도 정말 대단한 것 같다.
조디 포스터는 <홈 포 더 할리데이>(1995) 이후 거의 17년 만에 세 번째 연출작을 내놓았다. 우울증을 극복하려는 한 중년 남자의 처절한 몸부림은 물론이고 환자의 주변 인물 하나하나를 어루만지는 솜씨가 제법 유려하다. 멜 깁슨과 조디 포스터, 안톤 옐친과 제니퍼 로렌스 등 배우들은 어디서나 볼 법한 상처 많은, 그러나 그것을 극복하려고 노력하는 현대인을 안정적으로 표현해낸다.
가족영화라고 하기에는 아쉬운 2%
이 영화는 현대인들이 많이 겪고 있는 우울증을 잘 드러낸 영화이다. 하지만 가족이 보기에 특히 어린 자녀들과 보기에는 조금 어렵다. 제목만 봤을 때는 왠지 가족들이 둘러 앉아서 함께 볼만한 가족 영화처럼 생각될 수 있는데, 정작 아이들이 중년 아저씨의 우울증을 공감하고 느낄 수 있을지 의문이다. 요즘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증상을 가볍게 넘기는 경우가 많다. 남들에게 비춰지는 모습은 멋있고, 아름다운 모습을 바라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은 자신의 모습을 포장한다는 생각에 아무리 자신을 가꾸고, 성공한 모습이 되어도 만족하지 못하고 이러한 무기력감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비버가 월터에게 이야기해주는 내용도 공감이 많이 되고, 특히 우울증 치료를 위하여 수많은 상담 및 여러 프로그램에 참여를 했지만, 나이 지질 않고 결국은 가족들을 떠나 극단적 선택을 하다가 비버를 만나면서 내면의 자신과 이야기를 하면서 자신의 안 좋은 상황을 있는 그대로 외부에 드러내고 기존 체계를 무너뜨리는 장면은 흥미롭다. 그러나 좋은 때도 있었지만 오히려 가족들과 비버로 인한 갈등으로 결국 비버를 버리기 위하여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되는 과정들이 결과적으로 그러한 선택은 잘못되지 않고 다시 가족과 화목하게 잘 살게 되지만, 그 과정은 결코 기분이 좋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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